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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Songhyun

카카오 프론트엔드 개발자 since 2018. 01.

전국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난리다. 회사 안에서는 지난 주쯤부터 재택근무 논의가 되고 있었는데, 2월 25일 드디어(?) 전사 단위의 재택근무 공지가 났다. 꽤 긴 시간을 재택근무로 보내게 되었고, 기존 업무와는 다른 새로운 점, 출퇴근하면서는 몰랐던 점들을 정리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글을 마무리짓고 있는 3월 4일, 나는 여전히 재택근무 중이다. 원래는 매일 일기처럼 글을 남기고 재택근무가 끝난 뒤 정리해서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이제 신박한 것은 다 접한 것 같고 더 이상 쓸 말도 생각나지 않아서 이 정도에서 끝내기로 했다. 더 쓸 말이 떠오르면 나중에 후기로 적든지 해야겠다.

2월 25일

재택근무라면 2018년에 태풍 때문에 한 번 경험해본 적이 있다. 다만, 당시엔 어쨌든 하루만 버티면 된다! 라는 마음가짐이었기 때문에 조금 불편해도 상관없었지만, 이번 재택근무는 언제 끝날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었다. 재택근무가 결정된 날이 25일이었는데, 그 주 주말쯤 재택근무를 얼마나 이어가야 할지 다시 한 번 논의해보겠다고 했다. 최소 3일, 길게는 2주 이상 집에서 일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릴리즈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회사 안에서 일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하루에 0.8*회사 정도의 생산성은 나와 줘야 원활한 업무가 가능할 것 같았다.

회사 차원에서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조직장 레벨에서는 이 기회에 재택근무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을지 시험해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혼자 일하는 느낌을 덜기 위해 파트 톡방에서 잡담을 권장하거나, 매일 아침 근무시간을 공유받거나(시스템적으로 공유가 되기는 하지만 업무중에 유동적으로 근무시간을 변경하는 경우가 많아서 직접 공유하는 편이 정확하다), 재택근무 후기에 대한 서베이를 받기도 했다. 좋은 리모트 워크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나도 사내 커뮤니티에 리모트 워크 꿀팁 공유 스레드를 하나 만들었는데, 생각만큼 흥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좋아요를 좀 받았다.

화상회의 꿀팁을 특히 좋아해 주시더라

재택 준비

일단 회사에서 노트북을 챙겨왔다. 바로 전날 회사가 너무 더워서 체온이 37.5도를 찍는 바람에(집에 오니 정상 체온으로 돌아왔다. 이게 다 회사 때문이다) 잠깐 재택근무를 체험해볼 기회가 생겼기 때문에 좀 더 여유롭게 준비물을 챙길 수 있었다.

우리 회사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무조건 맥북을 쓰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윈도 환경인 집과는 좀 차이가 있다. 아마 최근 생긴 IT기업이라면 거의 비슷할 것 같다. 나처럼 집과 회사의 개발환경에 차이가 날 경우 챙길 것이 좀 더 늘어난다. 모니터 변환 젠더와, 맥용 USB 허브를 챙겨와서 집에 있는 주변기기와 연결했다. 별 문제는 없었지만,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고 윈도 키맵으로 맥에서 타이핑하려니 조금 불편하다. 다음에 길게 재택할 일이 생기면 귀찮아도 키보드까지 챙겨야겠다. 다행히 이틀 뒤 도저히 이 칩거를 견딜 수 없다며 회사까지 드라이브를 다녀온 파트장님이 키보드를 챙겨다 주셨다.

며칠 이상 나와 업무적으로 함께할 책상이기 때문에 쌓아놨던 잡다한 물건들을 전부 다른 곳으로 치우고 먼지도 깨끗이 닦아냈다. 책상이 케이블로 엉망이라 일단 맥북으로 잘 감추고 쿠팡에서 케이블타이를 주문했다.

우리 파트에서는 재택근무 환경 경진대회(?)를 열었다. 근무환경이 제일 좋은 한 명을 뽑아서 재택근무가 끝나는 날 그 사람이 커피를 쏘기로 했다.

버킷 리스트

재택근무는 원래부터 재택근무가 메인인 회사가 아닌 이상 당연히 기존 근무형태보다는 불편할 수밖에 없지만, 반대로 재택근무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도 있을 것 같았다. 생각나는 대로 버킷 리스트를 만들고 하나씩 해 보기로 했다.

  • 일하면서 빨래 돌리기 (2월 26일)
  • 점심 시간에 샤워하기
  • 집 앞 카페에서 일하기
  • 집에서 야근하기 (2월 28일)

2월 26일

업무 일지

지켜보는 눈이 없다보니 나태해질 것 같아서 업무일지를 작성하기로 했다. 평소에도 업무일지 비슷한 것을 적긴 하지만 뭘 해야 하는지, 몇 시간이 걸렸는지 정도만 적는 편이었는데, 재택근무를 계기로 좀 더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작성해봤다.

Notion, KanbanFlow 등등 이것저것 도전해 봤는데, 원래 쓰던 대로 Workflowy에 업무일지를 적고, 근무시간 트래킹을 위해 Focus To-Do 앱을 추가로 유료결제하여 사용하기로 했다. 필요한 만큼은 다 동작하기 때문에 만족스럽게 쓰고 있다. 이 앱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소개해봐야겠다.

일하면서 빨래 돌리기

조금 시끄럽다는 것만 빼면 괜찮았다.

그나마 출퇴근, 식사시간 잠깐 사이에 짬을 내어 걷고 움직이던 것이 줄어들어서 집안일의 비중을 늘렸다. 좀 더 구석구석 쓸고 닦았다는 뜻이다. 나는 업무 집중을 위해 뽀모도로 타이머를 사용하고 있는데, 재택근무를 계속하다 보니 왠지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여 줘야 할 것 같아서 쉬는 시간 5분을 알차게 사용하고 있다. 할 집안일이 다 떨어지면(매일 계속 생겨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가볍게 운동도 해 보면 어떨까 싶다.

첫 화상회의

우리 회사는 G Suite을 사용하고 있다. 자연히 화상회의도 G Suite Meet(행아웃)을 사용하여 진행했다. 행아웃 미팅은 대학 다닐 때 몇 달 정도 한 적이 있어서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매일 사무실에서 보던 사람들을 웹캠으로 보니까 왠지 좀 남사스러웠다(?). 마이크나 이어폰을 준비해두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맥북 하나만으로도 회의하는 데 나쁘지 않았다. 다만 하울링을 신경쓰는 팀원들은 있는 것 같다.

단점은 회의를 끝내면 왠지 혼자 남는 기분이 돼서 쓸쓸해진다는 것이다.

2월 27일

모각코(모여서 각자 코딩)

쓸쓸하다는 느낌을 받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팀원이 심심하면 들어오라며 미팅을 하나 열었길래 들어가서 코딩했다. 처음엔 좀 신경쓰였는데 나중엔 거기 있는 줄도 모르게 되더라. 다만 홀로 재택근무의 심심함을 해소하기에 충분한 방법은 아니었다. 역시 그냥 사람을 만나는 게 좋겠어.

2월 28일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었다. 평소였으면 이럴 때 간식타임을 갖거나 해서 좀 회복되고 돌아올 텐데, 집에 있으니 잠깐 쉬는 것도 왠지 어뷰징하는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든다.

이렇게 되니 어디까지를 오프로 보고 어디까지를 잠깐 휴식으로 봐야 하는지 조금 고민이 되었다. 회사에 있으면 어쨌든 자리에 앉아 있으니 일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가. 생각해보니 그렇게 대충 시간을 보냈던 적도 있어서 조금 반성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고쳐질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앞으론 좀 덜 농땡이피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는 이 날 전염병 재택근무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밖에 공유해도 되는 정보인지 확실하지 않아 여기에 전문을 올리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결론적으로 재택근무는 당분간 무기한이다. 팀원 중에는 진짜 유치원, 초/중/고등학교가 개학할 때까지 재택근무를 하는 게 아니냐고 전망하는 분도 계셨다. 이때쯤 슬슬 밖에 나가서 사람 좀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집 앞 카페에서 일하기

다른 이유로 재택근무를 하는 거였다면 한 번쯤 해 봤을 텐데, 아무래도 전염병 때문에 그런 것이다 보니 그냥 나가는 것도 조심스럽게 된다. 마스크도 써야 하고... 대신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집 앞 카페에 가서 단 음료를 하나 사 왔다.

집에서 야근하기

재택근무를 하면 한 번쯤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회사에서야 일을 붙잡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퇴근시간을 넘겼더라... 하는 일이 잦았는데, 집에 있으니까 그게 잘 안 된다. 야근을 한다 해도 30분 정도? 확실히 업무환경이 집이다 보니 집중력이 좀 떨어진다. 아래 단점 란에도 적었지만 일부러 업무시간이 끝나면 그냥 퇴근 찍고 업무하던 것들을 다 종료해버리기도 했고... 그냥 업무시간 집중력을 뽑아내는 게 합리적일 듯하다.


총평

장점

  1. 출퇴근 시간이 없다는 것. 나는 출퇴근에 하루에 1시간씩 쓰고 있는데, 이게 길바닥에 시간을 갖다버리는 것으로 느껴질 만큼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2. 몸단장에 좀 덜 신경써도 된다.
  3. 집안일에 시간을 더 쏟게 된다. 집이 점점 깨끗해진다.
  4. 노래를 열창하고 헤드뱅잉을 하면서 코딩을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5. 회사 입장에서 느낄 만한 메리트도 있다. 집에 보내놓으면 감시하는 눈이 없어서 놀고먹는 거 아닐까 생각할 법 한데, 오히려 딴짓을 하면 너무 본격적으로 노는 것 같아서 죄의식이 들어 다시 일로 돌아온다.

단점

  1. 사람 보기가 힘들다. 이건 이 재택근무가 그냥 리모트 워크가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격리에 가까운 형태이기 때문에 특히 더 그런 듯하다. 근처 사는 팀원들이랑 모각코를 한다든지, 하다못해 근처 카페에 가서라도 일하면 훨씬 덜 외로울 것 같다.
  2. 출퇴근 시간이 없다는 것. 일터와 휴식 공간이 분리되지 않는다. 퇴근을 했는데도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니 내가 퇴근을 한 건지 안 한 건지 마음으로 와닿지 않는다. 뒤돌면 침대라는 말은 눈 뜨면 일터라는 말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어느 쪽이 더 자신에게 크게 다가오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 이건 내가 원룸에 살아서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 하다못해 투룸 정도만 됐어도 훨씬 덜했을 것이다.
    • 출근 준비, 퇴근 준비라는 게 단순히 준비하는 것도 있지만 내 머릿속의 업무 모드를 켜고 끄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업무시간에는 되도록 침대에 가까이 가지 않고, 출근 전 꼭 세수는 하기로 했다. 퇴근하면 남은 할 일이 좀 아쉽더라도 미련없이 모든 업무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의식적으로 출퇴근한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좋을 것 같다.
  3. 아이가 있는 팀원들은 아이 보는 문제로 크게 고생하시는 것 같았다. 재택근무가 끝날 때까지 장기휴가를 진지하게 고민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4. 집의 업무 환경이 좋지 않은 경우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앞에서 설명한 육아 문제도 있고, 방음이 안 된다든지, 집에 인터넷이 안 된다든지 하면 이래저래 곤란한 상황이 된다.
  5. 억지로 몸을 움직여줘야 한다. 회사는 하다못해 화장실을 갈래도 1분 이상 걸어가야 하는데 집에 있으면 앞구르기를 해서도 갈 수 있다. 타이머를 맞춰 두고 30분에 한 번 정도 스트레칭을 하는데 이것만으로는 모자란 느낌이다. 출퇴근 전후로 맨몸운동을 하는 것도 좋겠다.

재택 근무라는 것이, 단순히 집에서 일하는 것도 있지만, 회사(정확히는 사무실)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할 수 있게도 해 주는 것 같다. 난생 처음 회사를 '일단 가는 곳'이 아니라. '업무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을 갖춰둔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혼자 살면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나, 집에 있으면 아이를 돌봐야 하는 사람들에게 리모트 워크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이 부각될 것 같다. 반대로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라면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출퇴근 제도, 리모트 워크 제도 각각의 장단이 아주 뚜렷해서, 어느 한쪽이 우세하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바꿔 말하면, 일주일에 하루는 자유롭게 재택근무를 하게 해 준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두 제도를 상호 보완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구직자 입장에서 아주 큰 복지 내지는 메리트로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